[인권프로젝트ON]예술 활동과 함께하는 한국전쟁 다크투어

2022-12-29

2022 정기공모사업 '인권프로젝트-온'을 수행한 단체들과의 서면 인터뷰를 공유합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의 신재욱 활동가의 이야기를 통해 사업을 기획하고 성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살펴보세요.🚌 🚲 🚙  


🔉 사업을 수행한 단체/연대체를 간략하게 소개해 주세요.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는 한국군을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의 가치를 따르는 군대로 변화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이를 위해 한국군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적인 활동을 합니다. 2019년부터는 한국전쟁 70년 기간을 맞아 한국군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호국과 반공을 기반으로 하는 ‘안보제일주의’라는 군의 정체성이 한국전쟁 전후 시기 한국군이 관통해 온 폭력과 가해의 역사에 기반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2019년에는 한국군의 자기 재현 공간인 용산 전쟁기념관을 변화시키기 위한 연속토론회를 개최했고, 2020년에는 ‘허락되지 않은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피난, 폭격, 학살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민간인이 전쟁에서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에 대한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이어지는 맥락에서 2021년에는 한국전쟁 전후 시기 피해와 가해, 항쟁의 역사를 담고 있는 전국 곳곳의 ‘다크투어’의 장소를 소개하는 ‘한국전쟁 다크투어 가이드북’을 발간했습니다.


🔉 이번 사업을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는지 알려주세요.

앞서 말씀드린 한국전쟁과 관련한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사업을 기획했습니다. 토론회나 전시 같은 그동안의 활동이 다소 인식적이고 당위적인 측면에만 집중해왔다는 내부의 평가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고 그 일의 영향이 지금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잘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과 지금의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선 그 일이 실제로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연결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단지 어떤 문제가 있다는 인식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 문제가 나와 연루되어 있다는 감각을 통해서 가능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연루의 감각을 통해서 어떤 사회 운동의 현장은 ‘나’의 현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2021년에 ‘한국전쟁 다크투어 가이드북’을 만들기 위해 방문한 전국의 수많은 전쟁 현장들(특히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던)이 지금의 한국전쟁 현장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국 곳곳의 호국과 반공을 외치는 수많은 전쟁기념물과는 다르게 야산이나 들판 등 외진 곳에 거의 흔적조차 남지 않은 채 존재하는 수많은 한국전쟁 다크투어의 장소들은 이 사회가 어떻게 전쟁의 어두운 면을 비가시화하고 기억하는 것을 막으려 했는지를 단지 지식만이 아니라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신체적 감각이나 정서적 감응을 통해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그래서 그 장소들을 사람들과 함께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기존의 답사처럼 이런저런 장소를 들며 단지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서 어떤 예술적 활동을 통해 장소 혹은 기억과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으로 장소와 연대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판단해 이번 ‘예술과 함께하는 한국전쟁 기억여행’을 기획하게 된 것입니다.


🔉 사업을 통해 어떤 활동을 진행하셨는지 활동내용을 소개해 주세요.

이번 기억여행의 제목은 ‘시작하는 흙: 밟다 묻다 담다’였습니다. 함께 사업을 기획한 예술인들이 지어준 이름인데, 유실되거나 퇴적물이 계속 쌓이는 등 지표 환경의 변화가 심한 한국 대부분의 토양은 언제나 유년기의 토양이라는 점에서 가져온 제목입니다. 이 흙처럼 우리의 기억 역시 과거의 역사와 상관없이 언제나 막 시작하는 기억이지만, 어쩌면 사라져가는 과거를 과거와 똑같은 방식이 아니라 계속해서 현재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또 기억을 이어나간다는 차원에서 이러한 제목을 지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선 청주의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이 일어났던 분터골, 당산공원, 옥녀봉 세 장소를 방문했는데 밟다, 묻다, 담다는 각 장소에서 참여자들이 했던 행위를 뜻하기도 합니다.

참여자들은 이번 여행에서 참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시작할 때는 여행 기록을 위한 일종의 키트를 나눠 받는데, 거기에는 실도 있고 연필과 흑연도 있고 탁본을 뜰 수 있는 종이도 있으며, 각자의 생각을 글이나 그림으로 기록할 수 있는 여러 페이지들이 있습니다. 참여자들은 여행의 과정에서 키트에 동봉된 물건을 통해 자연물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장소들에서 사물에 실을 묶거나 탁본을 뜨거나 풍경을 그리며 해당 장소들과 관계를 맺고, 그 과정에서 마음에 찾아온 것들을 페이지에 기록했습니다. 각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장소와 또 그 장소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기억과 교감하면서, 그 장소에서 일어났던 일은 그저 과거의 먼 사건으로만 여겨지는 것이 아닌 나와 연결되어 있는 사건임을 신체의 감각으로 느끼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실제 여행 프로그램의 마지막에 모두가 둘러앉아 회고를 나누는 시간에서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아픔과 슬픔을 각오하고 왔는데 해원을 통해 회복하는 느낌이 들었다거나, ‘잊지 않겠습니다’나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다소 공허하게 느껴졌었는데 이제는 정말 그 기억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것을 느꼈다거나, 과거로부터 기억이 이어진다는 것이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계속 기억을 기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거나, 그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많은데 이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죽은 사람들을 느껴볼 수 있었다거나 하는 등의 소감이 있었습니다.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이런저런 소감을 들으며 이 사람들이 각자의 기억과 느낌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주면서 그렇게 기억들이 계속 새로 시작하는 일이 생길 수 있겠구나란 어떤 믿음 같은 걸 갖게 되기도 했습니다.



🔉 이번 사업으로 얻게 된 성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사실 참여자들이 서른 명이 채 안 되는 적은 숫자였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참여자들이 이번 여행을 통해서 꽤 많은 변화를 느끼게 되었다는 걸 실제로 지켜보면서, 비록 인원은 적었어도 이번 여행의 목적 중 하나였던 한국전쟁 기억 관련 활동의 ‘적극적 지지자’ 만들기가 그래도 꽤 달성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2019년부터 계속 활동을 해오면서 너무 과거의 일만 다루다 보니 지금의 여러 사회 현장과의 괴리감을 느낄 때가 많았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서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활동가들도 이번 여행에 참여하면서 스스로도 이 아무도 찾지 않던 장소들에 사람들이 오가고 또 이 장소들과 마음을 주고받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감정의 격동을 느끼기도 했고, 이 사람들을 보니 이 활동을 계속해나갈 수 있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기도 했습니다.


🔉 이번 사업이 우리사회에 어떤 의미로 남았으면 하는지 말씀해 주세요.

여전히 군대는 우리 사회에서 침범할 수 없는 ‘성역’처럼 남아 있습니다. 성역화를 가장 근본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호국, 영웅, 반공을 기반으로 한 군 중심의 전쟁기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기억에서부터 ‘안보제일주의’나 호전적인 전쟁관이 시작되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러한 절대적인 지위를 지니고 있는 한국전쟁의 기억을 이번 사업과 같은 여러 활동을 통해서 ‘상대화’할 수 있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전쟁에 대한 경각심이나 평화에 대한 상상력이 가능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또한 이 기억의 ‘상대화’가 단지 배워왔던 것과는 다른 역사가 있구나에서 그치지 않고 이번 여행과 같이 그동안 잊힌 한국전쟁의 기억과 보다 면밀하게 관계 맺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면, 먼 과거로만 여겨지는 한국전쟁의 여러 장소들이 실제 사회운동의 현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 활동에 대한 소감 / 사업 이후의 활동 방향 / 우리 사회의 과제 등을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내년 2023년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이니만큼 한국사회의 여러 곳에서 평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더불어서 한국전쟁과 관련한 이야기도 많이 나올 겁니다. 이런 계기성을 통해서 또 사람들과 함께 이번과 같은 방식의 여행을 떠나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각 참여자들이 키트를 통해 기록한 것을 한데 모아 공동기록집으로 만들었습니다. 개인적인 리뷰에서 이런 문장을 썼습니다. “공동기록집은 이번 여행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공유하려 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기억을 나눠 받고 다시 거기에 무언가를 채워 내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 주는 일. 그렇게 계속 기억들이 시작하는 일. 그런 일들이 거듭 일어나는 시간을 바라본다.” 이러한 방식은 어쩌면 지금까지 사회운동이 확장해온 본질적인 방식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년에는 부디 지금까지 오래 잊혀 온 한국전쟁의 가해와 피해, 항쟁의 기억을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고 느끼게 되어서 다른 평화에 대한 상상력이 진지하게 퍼져나가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